1960년대 후반, 서울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공동주택 공급이 시작되었지만, 서울로 몰리는 인구는 그 속도를 훨씬 앞질렀습니다. 특히 강북 지역은 낙후된 주거 환경과 불법 건축물 밀집으로 인해 도시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서울시는 본격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목표로 ‘강북 재개발’과 ‘공영아파트 공급’을 병행하는 대규모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1970년대는 공공이 도시를 다시 짓기 시작한 시기로, 수도권 아파트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서울 도심의 주거 위기와 강북 지역의 과밀화
1970년대 초 서울의 인구는 이미 54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수많은 인구는 일자리를 따라 서울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도시 곳곳에는 무허가 건물, 판잣집, 달동네가 늘어났습니다. 도로와 배수,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된 주거지는 재해와 화재에 매우 취약했고, 위생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특히 강북 지역은 이러한 주거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 곳이었습니다.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구 제기동, 성북구 정릉동 등은 인구 밀도가 높고 주택 노후화가 극심하여 서울시가 가장 먼저 재개발 대상으로 설정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작과 재개발 구조

1973년 도시계획법 개정을 통해 재개발 구역 지정과 철거 명령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서울시는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본격 추진했습니다. 이 사업은 단순한 철거가 아닌, 기반시설 정비와 신규 주택 공급이 결합된 구조였습니다. 대한주택공사는 국고 지원을 받아 공영아파트를 직접 건설했고, 이는 분양 또는 임대의 형태로 입주자에게 공급되었습니다.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된 이 방식은 이후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공영아파트 공급과 생활환경 개선
1970년대 중반부터 강북 일대에는 수많은 공영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공영아파트는 국가나 지자체가 직접 건설하고 분양 또는 임대하는 방식으로, 주로 저소득층과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이었습니다. 이전 판자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생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한 이 아파트들은 강북 지역 주거지의 분위기를 크게 바꿨습니다.

공영아파트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체로 4~5층 규모의 저층 아파트이며, 철근콘크리트 벽식 구조로 시공됨
- 전용면적 30~40㎡의 소형 평면 구성, 실내 화장실·입식 부엌 포함
- 단지 내에 놀이터, 공용 세탁장, 소규모 상가 등을 함께 배치
대표 단지로는 정릉공영아파트, 청량리공영아파트, 불광동공영아파트, 이촌동공영아파트 등이 있으며, 서울 강북권의 주거 품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한주택공사의 역할과 공공주택 제도의 확립
공영아파트 시대의 배경에는 대한주택공사의 조직적 역량이 존재했습니다.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으로 공사는 토지 수용부터 분양·임대까지 일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공영아파트 대량 공급이 가능해졌습니다. 국고 보조와 주택자금 융자가 확대되면서, 주택공사는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외곽 도시까지 공영주택을 공급했습니다.
1975년 기준, 서울·수도권 지역의 공영아파트 공급량은 전국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수도권 내에서도 강북 지역의 공급 비중이 가장 높았습니다. 당시 주택공사는 주거를 국가의 기본 복지로 설정하고, 저소득 계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직접 주거지를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재개발이 불러온 갈등과 한계
그러나 강북 재개발은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철거 대상이 된 주민들 중 일부는 입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고, 이에 따라 퇴거 반대 시위나 행정소송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종로구와 동대문구 일대에서는 기존 거주민의 정착권 보장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공영아파트는 당시 기준으로는 획기적인 주거 형태였지만, 실제 생활 편의 측면에서는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주차 공간이 거의 없었고, 난방이 불균형하거나 방음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존 불법 주거 환경과 비교했을 때는 그 차원이 달랐고,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결과와 구조적 변화
강북 재개발과 공영아파트 정책은 서울의 주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던 중산층뿐만 아니라, 저소득 계층도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아파트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아파트는 단순한 ‘신식 건물’이 아니라, 도시 계획의 핵심 구조물로 기능하게 되었고, 주거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서울 강북의 이미지도 급격히 개선되었으며, 공영아파트 단지들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공영아파트, 국가가 도시를 직접 설계한 시기
1970년대는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국가가 도시를 설계하고, 주택을 직접 공급하던 마지막 시대였습니다. 민간 주도의 고급 분양 아파트가 본격화되기 전, 공공이 중심이 된 주택 정책은 도시 전체의 기반을 다지고,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1980년대에 접어들며, 서울은 민간 분양과 강남 개발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1980년대, 강남 개발과 민간분양 아파트의 확산〉**을 다룰 예정입니다.


